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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드라마 사의찬미 : 비극적 순애의 절정

    드라마 사의찬미

     

    사의찬미는 2018년 SBS에서 방영된 6부작 미니시리즈로 한국 최초의 서양식 소프라노로 알려진 윤심덕과 극작가 김우진의 실화를 바탕으로 한 시대극 멜로 드라마이다. 이종석과 신혜선이 주연을 맡아 1920년대 일제 강점기 조선과 일본을 오가며 시대가 허락하지 않은 사랑의 비극을 섬세하게 그려낸다.

     

    방송사 SBS
    방영 기간 2018년 11월 27일 2018년 12월 4일
    연출 박수진
    극본 조수진
    출연 이종석 김우진 역 신혜선 윤심덕 역 김명수 김원해 외

    총 분량은 6회로 길지 않지만 한 회 한 회가 영화처럼 밀도 있게 구성되어 있고 서정적인 영상미와 음악 덕분에 짧은 러닝타임에 비해 여운이 오래 남는 작품이다.

     

     

     

    줄거리

    드라마 사의찬미

     

    1920년대 일제 강점기 조선과 일본. 검열과 탄압 아래에서 글을 쓰는 극작가 김우진은 현실과 이상 사이에서 끊임없이 갈등한다. 집안에서는 기득권 계층의 아들로 살아야 하고 사회적으로는 식민지 조선의 지식인으로서 책임을 느끼지만 정작 자신이 원하는 삶과 예술은 점점 멀어지는 듯하다.

    한편 윤심덕은 한국 최초의 소프라노라는 이름을 얻었지만 예술가로서의 자부심과 생계를 책임져야 하는 현실 사이에서 고단한 삶을 살고 있다. 무대에 서서 박수를 받지만 정작 자신의 노래가 어디를 향하고 있는지, 무엇을 위해 노래하고 있는지 스스로에게 끊임없이 질문하게 된다.

    두 사람은 일본 유학과 공연 활동을 통해 인연을 맺고 서로에게서 비슷한 외로움과 결핍을 발견한다. 조선으로 돌아가야 하는 현실 속에서 둘은 각자의 자리로 돌아가야 하지만, 사회적 지위와 가족, 시대의 시선을 생각할수록 서로에 대한 마음은 더 깊어진다. 끝내 두 사람은 배를 타고 돌아오는 길에 세상의 모든 벽을 등지고 마지막 선택을 향해 나아가게 된다.

    드라마는 이미 알려진 이 비극적인 결말을 향해 가면서도 왜 이들이 그렇게까지 내몰렸는지, 사랑과 예술이 어떻게 희망과 절망을 동시에 안고 있었는지를 차분하지만 깊게 보여준다.

    캐릭터와 연기 분석

    김우진 역 배우 이종석

    김우진 (이종석)

    김우진은 현실을 외면하지 못하는 지식인이자 무대와 문학을 사랑하는 예술가이다. 집안과 사회가 기대하는 역할과 자신이 진심으로 원하는 삶 사이에서 번민하는 인물로, 이종석은 특유의 절제된 표정과 담백한 말투로 김우진의 내면을 차분하게 표현한다. 과장되게 폭발하는 감정 연기 대신 작은 떨림과 흔들리는 눈빛만으로 우진의 갈등과 사랑을 드러내기 때문에 보는 입장에서는 오히려 더 크게 와 닿는다.

    특히 무대 뒤에서 대사를 고치고 연출을 고민하는 모습, 식민지 조선의 현실을 외면할 수 없으면서도 사랑과 예술 사이에서 방황하는 장면들이 인상적이다. 심덕을 향한 마음을 함부로 드러내지 못하고 끝까지 조심스럽게 다가가는 태도는 우진이라는 캐릭터의 성격과 시대적 한계를 동시에 상징한다.

    윤심덕 역 배우 신혜선

    윤심덕 (신혜선)

    윤심덕은 한국 최초의 서양식 소프라노라는 타이틀을 가진 인물이지만 현실에서는 늘 벼랑 끝에 서 있는 예술가에 가깝다. 무대 위에서는 화려하지만, 무대 밖에서는 가족의 생계를 책임져야 하는 딸이자 시대의 편견과 시선을 온몸으로 버텨내야 하는 여성이기 때문이다.

    신혜선은 무대에 서 있을 때와 무대 밖에 있을 때의 심덕을 완전히 다른 얼굴로 연기한다. 노래할 때는 단단하고 빛나는 예술가지만 혼자 있을 때, 혹은 우진과 마주할 때는 불안과 외로움이 묻어나는 표정을 통해 이 인물이 얼마나 고독한 삶을 살아왔는지를 보여준다. 특히 자신의 목소리를 통해 삶을 증명하고 싶어 하면서도, 현실의 벽에 부딪힐수록 점점 지쳐가는 모습이 안타깝게 다가온다.

    주변 인물들

    우진의 가족과 심덕의 가족, 동료 예술가들은 두 사람의 선택을 둘러싼 사회적 압력과 시대적 분위기를 보여주는 장치로 등장한다. 한 사람 한 사람이 길게 비중을 차지하지는 않지만, 그들이 던지는 한마디와 표정 속에서 당시 사회가 예술과 사랑, 여성의 삶을 어떻게 바라보고 있었는지 자연스럽게 드러난다.

    드라마 사의찬미

    실존 인물 윤심덕과 김우진

    드라마 사의찬미는 실존 인물인 윤심덕과 김우진의 실제 이야기를 바탕으로 한다. 윤심덕은 1897년 평양에서 태어난 조선인으로, 서양식 성악을 전문적으로 공부한 한국 최초의 소프라노로 기록된다. 경성여자고등보통학교를 졸업하고 도쿄음악학교에서 유학하며 서양식 성악을 배우며 당시로서는 매우 드물었던 전문 여성 음악가의 길을 걸었다. 그녀는 공연과 강의, 녹음 활동 등을 통해 당대 대중문화의 최전선에 서 있었고, 새로운 여성상으로서 상징적인 존재가 되었다.

    김우진은 1897년 전남 출신의 극작가이자 평론가로, 서양 문학과 철학에 밝은 지식인이었다. 그가 남긴 희곡과 글들은 식민지 조선에서 서양식 극예술을 어떻게 받아들이고 변형할 것인가에 대한 고민을 담고 있으며, 훗날 한국 표현주의 연극의 선구자로 평가되기도 한다. 다만 그의 작품들은 생전에는 널리 알려지지 못하고 사후 수십 년이 지난 뒤에야 재조명되었다.

    두 사람은 공연과 유학, 문화 활동을 통해 인연을 맺고 사랑에 빠졌지만, 김우진에게는 이미 아내와 가족이 있었고 시대는 이들의 관계를 쉽게 용납하지 않았다. 결국 1926년 여름, 일본 시모노세키에서 부산으로 돌아오던 여객선에서 두 사람은 함께 바다로 몸을 던져 생을 마감한다. 그들의 죽음은 당시 조선 사회에 큰 파문을 일으켰고, 윤심덕이 녹음한 음반 사의 찬미는 더욱 널리 퍼지며 전설 같은 이야기로 남게 된다. 

    드라마는 이들의 실제 기록을 그대로 재현하기보다는, 이 비극적인 사실을 바탕으로 각 인물의 감정과 내면을 상상력으로 채워 넣어 한 편의 서정적인 멜로드라마로 완성했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역사적 배경 분석 1920년대 조선과 일본

    드라마 사의찬미

     

    사의찬미의 시간적 배경은 1920년대 일제 강점기다. 조선은 이미 일본의 식민지로 편입된 상태였고, 경성은 근대 도시로 빠르게 변화하면서도 식민 권력과 민중 사이의 갈등이 첨예했다. 1919년 3 1 운동 이후 민족운동과 문화운동은 더욱 다양하게 전개되었고, 예술과 문학 역시 시대의 불안을 품은 채 새로운 길을 모색하던 시기였다.

    한편 일본은 이 시기에 모던 보이 모던 걸로 불리는 새로운 도시 청년 문화를 향유하며, 서양식 복장과 카페 문화, 재즈와 영화가 확산되던 시기였다. 이러한 변화는 식민지 조선에도 영향을 미쳐 잡지와 신문, 유학과 공연을 통해 서양식 가치관과 라이프스타일이 유입되었고, 그 과정에서 새로운 여성상과 예술가상이 등장했다. 윤심덕은 바로 이런 근대적 여성상의 대표적인 인물로, 전통과 근대, 식민지 현실 사이의 긴장 위에 서 있던 인물이었다. 

    드라마는 화려한 무대와 도쿄의 거리, 경성의 극장과 골목을 오가며 이 같은 시대의 공기를 시각적으로 잘 보여준다. 한편으로는 서양식 복장을 입고 서양 음악을 부르는 윤심덕이 있지만, 다른 한편에서는 조선어로 공연을 하려 하면 검열에 걸리고, 예술가들의 작품은 정치적 이유로 쉽게 금지된다. 김우진과 동료 연극인들이 무대를 올리기 위해 허가를 받아야 하고, 내용 수정을 강요받는 장면들은 예술과 검열 사이의 긴장을 상징적으로 드러낸다.

    또한 사의찬미는 이 시대를 단순히 어둡게만 그리지 않고, 그 안에서도 여전히 사랑하고 웃고, 예술을 통해 살아가려 했던 사람들의 모습을 담는다. 그래서 더 비극적이면서도 현실적으로 다가온다. 시대의 폭력성과 개인의 선택이 교차하는 지점에 두 주인공을 세워 놓고, 관객이 그들의 사랑과 선택을 어떻게 바라볼지 묻게 만드는 작품이다.

     

     

    OST 해설 사의찬미라는 노래와 드라마의 음악

    드라마 사의찬미

    실제 곡 사의 찬미에 대하여

    실제 역사에서 윤심덕이 남긴 사의 찬미는 1926년 일본 오사카의 레코드 회사에서 녹음된 곡으로 알려져 있다. 이 노래는 루마니아 작곡가 이온 이바노비치의 곡 다뉴브강의 물결 선율에 윤심덕이 직접 가사를 붙였거나 김우진이 가사를 썼다는 설이 전해지는 곡으로, 우리나라 대중음악사에서 가장 이른 시기의 유행가이자 일종의 대중가요 시초로 평가받는다. 음반은 당시로서는 이례적인 판매량을 기록했고, 두 사람의 죽음 이후에는 더더욱 비극적인 전설을 입은 곡으로 회자되었다. 

    곡의 가사는 이 세상을 눈물의 세상으로 바라보며 죽음을 안식처럼 그리는 내용을 담고 있어, 윤심덕과 김우진의 실제 선택과 맞물려 더욱 강한 상징성을 갖게 되었다. 이 노래는 드라마에서 직접적으로 반복되기도 하고, 인물들의 감정을 떠올리게 만드는 모티브로 여러 차례 사용된다.

    드라마 OST와 감정선

    사의찬미 드라마에는 원곡 사의 찬미뿐 아니라 새롭게 제작된 OST들이 함께 사용된다. 소향이 부른 가슴만 알죠는 절절한 발성과 폭발적인 감정으로 두 사람의 사랑과 비극을 직접적으로 대변하는 곡이다. 잔잔하게 시작해 후반으로 갈수록 고조되는 구성은, 서로를 향한 마음을 억누르려 할수록 더 커지는 우진과 심덕의 심정을 떠올리게 만든다.

    소향 이외에도 HYNN(박혜원), 송하예 등 극의 분위기와 어울리는 애절한 목소리의 여성보컬들의 ost로 두고두고 플레이리스트에 넣어두고 듣기 좋은 곡들이다.

    이 밖에도 잔잔한 피아노 선율과 현악기가 중심이 된 연주곡들이 곳곳에 배치되어 있다. 배 위를 거니는 장면, 무대 뒤에서 조용히 악보를 바라보는 장면, 두 사람이 아무 말 없이 함께 걷는 장면 등에 흐르는 음악은 대사를 최소화하면서도 감정을 충분히 전달하는 역할을 한다. 드라마 전체가 하나의 긴 서정을 지향하는 만큼, OST는 화려한 후렴보다는 한 숨처럼 흘러가는 멜로디를 통해 여운을 남긴다.

     

    연출과 분위기 영상미

    드라마 사의찬미

     

    사의찬미의 연출은 과장된 눈물이나 극적인 장면 전환 대신 정적인 화면과 여백이 있는 구성을 택한다. 안개 낀 바다, 오래된 목조 극장, 좁은 골목과 기차 안 같은 공간들이 자주 등장하는데, 이런 공간들은 인물들의 심리 상태와 시대적 분위기를 동시에 담아낸다.

    특히 색감은 전체적으로 채도를 낮추고 따뜻한 조명과 어두운 그림자를 교차시키면서, 예쁜 그림 같은 장면과 침잠하는 정서를 함께 만들어낸다. 인물들을 가까이 잡는 클로즈업과 느린 카메라 워킹은 말보다 더 많은 감정을 눈빛과 숨결에 실어 전달한다.

     

    인상적인 장면들

    기차역과 항구에서 서로를 바라보는 첫 만남 장면은 두 사람의 관계를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처음에는 그저 스쳐 지나가는 인연처럼 보이는 시선이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서로에게서 자신을 비추어 보게 되는 거울 같은 존재가 된다.

    무대 위에서 노래하는 심덕과 객석에서 그 노래를 바라보는 우진의 시선은 이 드라마가 말하고 싶은 사랑과 예술의 의미를 압축한 장면이다. 심덕의 노래는 관객 전체를 향하고 있지만, 동시에 단 한 사람을 향하고 있다는 사실이 우진의 표정을 통해 조용히 드러난다.

    결말로 향하는 배 안의 장면들은 알고 있어도 마음이 무거워지는 부분이다. 드라마는 이 장면을 과한 멜로 연출로 소비하지 않고, 마지막까지 두 사람의 대화와 침묵에 집중한다. 그래서 그들의 선택에 동의하든 동의하지 않든, 시청자는 이 비극을 가볍게 넘기지 못하게 된다.

     

    작품이 던지는 질문 해석

     

    사의찬미는 단순히 슬픈 사랑 이야기로만 보기는 아까운 작품이다. 이 드라마는 사랑이 무엇인지 묻는 데서 한 걸음 더 나아가, 사람은 무엇으로 살아가는가라는 질문을 함께 던진다. 식민지라는 극단적인 시대적 상황 속에서 예술과 사랑은 개인에게 어떤 의미였는지, 그리고 그 선택의 책임은 어디까지 개인에게 돌릴 수 있는지를 생각하게 만든다.

    또한 윤심덕이라는 실제 인물을 중심에 놓음으로써, 근대 여성 예술가가 겪어야 했던 시선과 한계, 그리고 그 속에서 스스로를 증명하려 했던 노력에 대해 다시 보게 한다. 오늘날의 시선으로 보면 그들의 선택을 비판적으로 바라볼 수도 있지만, 드라마는 특정한 평가를 강요하지 않고 그저 관객이 스스로 느끼고 판단할 수 있도록 여지를 남겨 둔다.

     

    추천

     

    짧지만 깊은 멜로드라마를 찾는 사람, 시대극 특유의 정서와 서정적인 영상미를 좋아하는 사람, 실존 인물과 실제 사건을 느리지만 밀도 있게 다루는 작품을 선호하는 사람에게 사의찬미는 충분히 볼 만한 가치가 있는 드라마이다. 러닝타임이 길지 않아 부담 없이 시작할 수 있지만, 마지막 엔딩 크레딧이 올라갈 때쯤이면 오래된 흑백 사진을 한 장 받아 든 것처럼 묵직한 여운이 남는다.

     

     

    사의찬미는 윤심덕과 김우진이라는 실존 인물의 비극적인 이야기를 바탕으로, 사랑과 예술, 시대와 개인의 운명을 한 편의 서정시처럼 풀어낸 작품이다. 이종석과 신혜선의 절제된 연기, 잔잔하지만 강한 OST, 여백 많은 연출이 서로 잘 어우러져 짧은 분량 이상의 감정선을 만들어 낸다.

    결말을 알고 보는 드라마지만, 그 결말에 이르기까지의 과정을 따라가다 보면 자연스럽게 질문하게 된다. 만약 이들이 다른 시대에 태어났다면, 만약 세상이 조금만 더 너그러웠다면, 이 사랑은 다른 모습을 하고 있을 수 있었을까. 사의찬미는 그 질문을 남긴 채 조용히 막을 내리지만, 시청자의 마음속에서는 한동안 그 여운이 계속 울려 퍼지는 작품이다.